활엽수림에서 - 황지우 by Beenis






1971년 : 4월 대통령 선거. 5월에 재수하러 상경. 광화문 뒷골목에
진치고 날마다 탁구나 당구 치다.

1972년 : 대학 입학, 청량리 일대에서 하숙. 그해 여름, 어느날, 혼
자, 몰래, 588에서 동정을 털고 약먹다. 약값을 친구들한테 뜯기도
하고 새 책을 팔기도 하다. 가을, 국회 의사당 앞, 탱크가 진주하
고 학교 문 닫다. 새 헌법 선포되다. 추운 다다미 방에서 겨울 내
내 신음하다. 독이 전신에 번지는 꿈에서 화다닥 깨어나기도 하고,
가끔 인천 방면으로 나가 서해 갯벌에서 高銀詩集 읽다.

1973년 : 동숭동 개나리꽃 소주병에 꽂고 우리의 緯度 위로 봄이
후닥 지나간 것을 추도하다. 가정교사 때려치우다. 이 집 저 집
떠돌아다니다. 여자를 만났다 헤어지고, 그대 홍표 성복이 석희 도
연이 정환이 철이 형준이 성인이와 놀다. 그들과 함께, 스메타나,
'몰다우 江' 쏟아지는 學林 다방, 목계단에 오줌을 갈기거나, 지나
가는 버스 세워놓고 욕지거리, 감자먹이기 등 發狂을 한다. 發情
期, 그 긴 여름이 가다. 어디선가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나고, 어
디선가 바람이 불어오는 듯, 예감의 공기를 인 마로니에, 은행나
무 숲 위로 새들이 먼저 아우성치며 파닥거린다. 그때 生을 어떤
사건, 어떤 우연, 어떤 소음에 떠 맡기다. 그 활엽수 아래로 生이,
그 개 같은 生이, 최루탄과 화염병이 강림하던 순간, 그 계절의
城 떠나다. 친구들 '아침이슬' '애국가' 부르며 차에 올라타다. 황
금빛 잎들이 마저 평지에 지다.

1974년 : 홍표, 권행이, 오걸이, 종구, 해찬이, 내가 부르는 이름
들 끝에 10년 12년, 세월의 긴 꼬리표 달리다. 논산훈련소 저지
대에 엎드려, 황토에 얼굴 묻고 흐느끼다. 땅에 告解聖事하다. 그
리고 따블빽 하나와 군번 하나로 미지의 임지를 향해 北上하다.
한탄강, 北緯 38度線, 야산, 트럭 뒤 먼지가 그리는 작전도로, 공
공 사단, 세모 연대, 네모 대대, 가위표 중대, 당구장표 소대, 말
단 소총수 되다. 어린 소대장 구두 닦고, 탄약고 제초작업, 비온
뒤 도로 보수 공사, 낫질 삽질, 임진강서 모래 채취, 담뿌차 타고
씀밧골서 흙파고 중대 뒷산 호박 구덩에 똥푸고, 쎄멘 공구리 등
에 지고 군자산 방카 공사, 식기 닦고 빨래하고 살다. 그냥 비
인칭 주어로 살다. 이따금 서울서 여자가 면회오고 그녀가 준 돈
으로 동두천서 지친 성기와 잠을 자기도 한다. 미군 캠프부근을
하릴없이 서성이다 흑인 병사에게 팔뚝으로 크게 말좃을 그려 보
이며 낄낄거리기도 하고, 오후 늦게 귀대하다. 녹색이 서서히 갈
색으로 옮겨가는 군자산, 갈색이 다시 회색으로 내려오는 山峽,
으로 몰려 오는 첫눈, 맞으며 첫 휴가 나오다.(아, 환속하다) "그
세상이, 먼저 건드렸어, 우리를." 우리들 중에 한 사람이 말하다.
"아냐, 세상을 저질러 버렸어, 우리가." 우리들 중의 또 한 사람이
말한다. 그날 영화 '빠삐용' 보고 말없이 헤어진다. 생을 탕진한
죄, 아무도 말 못한다.

1975년 : 다시, 도연이 정환이 들어가다. 철이 석희한테 그런 편
지 오다. 아직 '아무데도' 못 간 그들에게 면죄부 띄우다. "너희는
살아 남아라. 날마다 새로 태어나라." 8월 부친 사망, 관보받다.
그날 수첩에 '또 한 사람 하역'이라고 쓰다. 그해 겨울 GOP 철책
으로 들어가다. 저쪽의 가장 따뜻한 쪽을 맞댄 이 쪽의 가장 추운
경계에서 겨울 지내다. 새벽 기슭에 서서 부은 눈으로 눈 덮인 산
을 맹하게, 바라보다.

1976년 : 제대. 해군서 제대한 성복이와, 그해 가을 신림동서 술
마시며 죽치다. [귀소의 새] 쓰다.

1977년 : 다섯 번째로 만난 여자와 결혼하다. '무작정 살다.' 6개
월 후 이 표류에 한 사람 더 동승하다. 딸 낳다. 그때 도연이 출
감하다. 정환이, 해일이 출감하고 곧 동부전선으로 가다. {문학과
지성} 겨울호에 성복이 '시인'으로 혼자 떨어져 나가고 석희, 군대
에서 음독 자살 기도하다.

1978년 : "날 먼저 죽이고 나가라, 이놈아" 어머니 울면서 말리
다. 친동생 끝내 광화문으로 나가다. 통대 99%지지, 같은 사람을
9대 대통령으로 추대하다. 홍표 나와서 컴퓨터 회사 취직하다. 출
판사에, 수입 오퍼상에, 섬유 수출업에, 하나씩 둘씩 들어가다. 더
러 결혼도 하고 그런 때나 가끔 서로 얼굴 보다. 생, 지리멸렬해
지다. 그 생의 먼 데서 여공들 해고되고 한 달에 한 번 대구로,
김해로, 동생 면회가서 옷과 책 넣어 주다.

1979년 : 대통령 죽다. 그리고 어느 날, 문득, 멀리서, 모두, 한
꺼번에 돌아오다.





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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